영랑생가
서울에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먼 남쪽 땅
강진 초입에서 영랑을 먼저 만나기 위해
사립문을 들어선다.
주옥같은 시어들의 산실에 들어서니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들리는 듯 하다
더운 여름날 엎드려 등목을 했음직한 우물
그 우물가에서 ‘마당앞 맑은 새암은’ 이라는 시가 탄생 했으리라
안채 뒤를 감싸고 있는 대숲과 제법 나이를 먹은 동백나무를 보며
돌에 새겨진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 의 시 를 읽어본다
장독대를 오가며 ‘오-매 단풍들것네’ 를 외치던 누이의 안타까운 모습도 떠 올려본다
생가 이곳저곳에서 아직도 그 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시가 된 소재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일것이다.
안채 툇마루에 앉아 시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삶을 듣고 나서야 겨우
사랑채로 발걸음을 옮길수 있었다.
단정히 한복을 입고 앉아 원고를 쓰다가 반갑게 맞아주는 영랑을 만났다
잠시 그와 함께 고귀한 자취와 여정을 함께하는 호사를 누려본다
고려청자 도요지(강진청자 박물관)
가마를 형상화한 건물 디자인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그 곳
그윽하고도 신비로운 청자빛깔과 상감기법
1,300도 숨이 막힐듯 한 열기의 가마 앞에서면
자신도 잊어버릴 것만 같은
도공의 땀과 굵은 손마디를 생각한다
보성차밭(대한다원)
고요한 삼나무 숲길 지나
물결치듯 구불구불 이어진 길
그대 손을 잡고 이랑사이 좁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미약한 바람결에도 차 향이 실려 날린다
싱그런 그 내음, 초록빛깔에 이윽고 마음이 열리니
녹차라떼 한 잔에도 온 몸이 따스하다
그윽한 행복이다
꼬막정식
벌교여자치고 꼬막무침 못하는 여자가 없다고 했던가
양념을 하지 않아도 윤기가 반드르르한 간간한 꼬막.
갖은양념에 버무려 나온 꼬막무침을 앞에 놓으니
소설 태백산맥의 외서댁 생각이난다
쫄깃하게 감칠맛 나는 꼬막무침위에
그녀가 배시시 웃는 모습으로 눈을 흘기며 앉아있다
태백산맥 문학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
1박2일 태백산맥 문학기행을 앞두고 서둘러 소설을 찾았다.
떠나기 전에 열권 중 기필코 다섯권을 읽고야 말리라
슬픈운명, 소화와 정하섭과의 만남
회의하는 지식인 김범우,
염상진과 하대치와 들몰댁,
벌교꼬막과 외서댁과,
벌교천과 소화다리(부용교)를
날마다 꿈에서도 만났다
문학관 앞에 섰다.
내 키보다 더 높이 쌓인 16,000매의 육필원고 와 마주친 순간
때로 만년필의 무게조차 힘에 겨웠다는 작가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리는듯 해서
소름이 돋았다, 부끄러웠다.
소화의 집
흔들리는 불꽃 사이로
바라소리, 꽹과리 소리, 주문을 외는 소리가 들려오면
허공을 치며 두 마리 작은 새 뒤엉켜 날개를 푸드득거린다
생기 넘치던 날갯짓 아직도 잔영으로 남아있는데
계란장수로 변장한 사내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며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여인의 슬픈 얼굴을 마주 하는 착각에 빠져본다.
벌교를 떠나며
미지근한 온기를 담고 있는 가을햇살
벌교천 변색한 갈대숲에도 병아리의 솜털처럼 보드랍고 아늑한
햇살이 아직 남아있는 그 어딘가에 슬픔이 꾸역꾸역 스며든다
투박하지만 끈끈했던 인정, 부서진 마음들을 부둥켜안은 채 황망히
떠나야했던 사람들
일제강점기 심었다는 벚나무가 지금은 아름드리 고목이 되었다.
제석산, 징광산, 금산이 있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과 긴 포구를 잇는 바다쪽에서
내려오는 어스름이 땅과 물의 경계 그 어디쯤에서 긴 포옹을 하는 것만 같다
다시 올 수 있으려나?
버스가 출발했다
차창으로 토요시장도, 철다리도 지나친다.
다시 올 수 있으려나....
2011 태백산맥 문학기행 체험문집
<< 남도의 멋과 달뜬 대화 >>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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