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의 국화꽃밭
詩 박철언
창살 너머 저기
십자가 보이는 온실 앞 조그만 뜰에
둥근 네모진 길다란 화분들에
어느샌가 국화꽃이 피어 있다
흰색 노란색 보랏빛 붉은 색깔의
높고 낮고 줄기 위로 더미를 이루며
이름없는 죄수들이 말없이 가꾸어낸
국화꽃밭이 가까이 멀리서 눈길 모은다
높은 담 속 감옥뜰에
죄 많다는 이들의 손길로도
여름천둥 가을무서리 견뎌내어
어찌 저리 자태를 뽑내는가
그윽한 그 향내에 취하려
창살에 머리 대고
기를 쓰고 심호흡 거듭해도
숨이나 가빠질 뿐 꽃내음은 닿지조차 않는다
참새가 까치가 고양이가
날고 뛰고 걸으며
여름 해바라기 뽑혀 나가고
마지막 몇 그루 코스모스마저 잘려버린
이제는 국화꽃 뒤덮으니 저녁 뜰을 차지한다
안개 낀 아침에, 가을비 주말 오후에
인적없는 뒤뜰, 창살 너머 국화꽃
한평 우리 속, 갇힌 자의 찢어진 가슴이여
향기조차 맛볼 수 없는 외로운 영혼이여
박철언 시집 <작은 등불 하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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