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 물을 추억하다
손순자 詩
아주 오래 전, 나 어렸을 적에
흙먼지 뒤집어 쓴 아버지
자전거 끌고 지쳐 돌아오시던 여름
아득한 땅 속 저 밑바닥에 있어 보이지 않더니
어머니가 떠 주시는 한 바가지 마중물을 붓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작두질을 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한달음에 솟구치던 생명력!
아이들 힘겨운 작두질로 겨우 받아 낸
냉수 한 사발로 타는 목을 축이시고
고된 노동의 짜디짠 땀방울 씻어낼 때
덩달아 양동이에 넘쳐나던
아이들 웃음소리로 고된 하루를 살아내고,
깊은 수면으로 곤한 무게 내려놓으면
너무 오래 써서 닳아빠진 펌프도
그제 서야 몸을 쉬던 그 때,
자꾸 목말라 마시고,
허기져 마시다 보면
어느 새 마음까지도 의젓해지던
가난한 유년의 그 펌프 물로
7남매의 키를 키우고, 살을 찌우며
“물 한 방울도 아껴야 잘 산다”시던
어머니 그 말씀이 ‘진리’인 것을…
손순자 시집<소요산 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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