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자 시인의 자작시

펌프 물을 추억하다

白松/손순자 시인 2007. 11. 9. 00:00
 

펌프 물을 추억하다


손순자 詩


 

아주 오래 전, 나 어렸을 적에

흙먼지 뒤집어 쓴 아버지

자전거 끌고 지쳐 돌아오시던 여름

아득한 땅 속 저 밑바닥에 있어 보이지 않더니

어머니가 떠 주시는 한 바가지 마중물을 붓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작두질을 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한달음에 솟구치던 생명력!


아이들 힘겨운 작두질로 겨우 받아 낸

냉수 한 사발로 타는 목을 축이시고

고된 노동의 짜디짠 땀방울 씻어낼 때

덩달아 양동이에 넘쳐나던

아이들 웃음소리로 고된 하루를 살아내고,

깊은 수면으로 곤한 무게 내려놓으면

너무 오래 써서 닳아빠진 펌프도

그제 서야 몸을 쉬던 그 때,


자꾸 목말라 마시고,

허기져 마시다 보면

어느 새 마음까지도 의젓해지던

가난한 유년의 그 펌프 물로

7남매의 키를 키우고, 살을 찌우며

“물 한 방울도 아껴야 잘 산다”시던

어머니 그 말씀이 ‘진리’인 것을…


손순자 시집<소요산 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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