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탐방기

인도기행(2)

白松/손순자 시인 2012. 9. 16. 10:26

인도기행(2)

 

강력한 흡인력! 무엇이 인도를 다시 찾게 만드는가?, 7년만이다. 다시 인도를 찾아 왔다.

아침부터 세계7대 불가사의 의 하나 라고 말하는 타지마할 묘를 방문한다고 해서 너무도 기대된다. 파란하늘 아래 빛나는 하얀돔, 신발을 모두 벗어 맡겨두고 타지마할에 들어섰다. 나는 이 거대한 건축물이 사람이 살기위한, 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이 아니라 단지 죽은 자에게 바쳐진 것이라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 ‘샤자한’이 그것을 짓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귀한 돌을 수집하고 기술자를 모집해 22년 이라는 세월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완성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인 타지마할 뒤에는 슬픈사연이 있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은 사랑하는 그의 아내 ‘무무타지마할’ 과 17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며 14번째 아이를 가졌다. 불행하게도 왕비는 마지막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고, 왕비를 잃은 ‘샤자한’ 은 그녀의 무덤을 아름다운 궁전과 같이 지어 마지막 애정을 표시했다.

그러나, 국력은 기울어져만 가고 결국은 왕도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 에 의해 쫓겨나 타지마할이 바라다 보이는 야무나강 건너편에 갇혀 지냈다고 하니, 정면의 내려가는 계단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바라본 두 개의 묘소가 왠지 안락해 보이지 만은 않는 것은 왜일까?...

하지만 여자로서 한 남자(샤자한)에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받아온 여인(무무타지마할) 에게 질투가 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갠지스강 일출을 보기위해 4시에 일어나 로비에 모였다.

사이클 릭샤(Cycle Rickshaw)를 타고 호텔에서 40분 걸리는 갠지스 강으로 출발했다.

1대에 두 명씩 나누어 타고 인파 가득한 거리를 바람처럼 내달렸다. 헐렁한 긴팔 남방과 홑바지 차림을 한 비쩍 마른 릭샤왈라가 진땀을 흘리며 페달을 밟는 것을 뒤에서 한가로이 앉아 바라보고 있자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른 시간인데도 갠지스강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갠지스 강에 오고 싶어 하는지, 그곳에서 일출을 보고 싶어 하는 지,

강물을 만져 보고 싶어 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강 주변으로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도 많았다. 마음 같아서는 갠지스강 주변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에서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며칠 머무르고 싶었다.

밤이 깊어지면 이유도 없이 마음이 심란해 못내 잠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건 순전히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릭샤 에서 내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나와 강가에서 전기로 하는 화장터를 먼저 본 후 나무를 높게 쌓아놓고 그 위에 노란 천으로 시신을 둘둘 말아 올려놓고 화장하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가 있었다.

순간 울컥했다. 울렁울렁 하고 속이 니글니글 거리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 이 세상에 잠시 왔다 간 흔적은 한 줌 재로 남아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성스러운 저 갠지스 강 에 뿌려질 것이다.

그 아래에서는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하는 사람들, 뱃전에서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배를 타고 강 중심으로 나가 보았다.

호기심이 생겨 맑은 물은 아니었지만 강물에 손을 넣어 보았다 매끈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한 움큼 손바닥으로 강물을 퍼 올려 냄새도 맡아 보았다.

얼굴 모습이 비슷비슷해서 누가 누구인지 몰라 우리가 타고 왔던 릭샤를 찾고 있는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릭샤꾼은 잘도 알아보고 자기가 모시는 주인을 모셔가듯 목에 두르고 있던 땀 닦는 천으로 의자까지 닦아주며 앉으라고 한다.

포장되지 않은 삶, 궁핍의 그림자 위에 피어나는 그 의 작은 미소에 내 마음도 열린다.

무심히 흐르던 갠지스 강물처럼, 멈추지 않고 흐를 그들의 자유, 그런 그들을 사랑하건 미워하건 그것 또 한 나 혼자만의 자유니까...

릭샤를 타고 가는 도로에는 각양 각색의 사람들로 붐볐다. 머리에 터번을 쓴 남자, 값싼 천으로 사리를 만들어 입은 여자. 이마에 붉은 점을 친 힌두교인 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바라나시’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약 40분 걸리는 ‘카주라호’(Khajuraho) 로 향했다.

인구도 얼마 안되는 이 작은 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뭘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카주라호’에 있는 힌두교들은 신들의 성애 모습이 아주 리얼하게 조각된 미투나 상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었다. 이런 별난 조각을 보려고 이 작은 마을로 비행기를 타고 꾸역꾸역 몰려드는 이유를 조금 알것 같기도 했다.

종교 사원에 성(性) 스러운 조각 이라니...

굳이 안내인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는 성애 모습을 그린 조각들, Oral sex, Animal sex, 지금의 단어로 표현하기 조차 민망한 조각들 을 보며 앞서가던 어떤 일행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60평생 헛 살았어, 헛 살았어” 그 의 아내가 “어머 이이는...” 하며 꼬집는 모습 보며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그 중 쉽게 이해되는 것은 당시 브라만 계급의 소녀들에게 일종의 성교육 이라는 얘기와 벼락을 막기 위해서 비의 신 인드라 를 달래기 위해 만든 조각상 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미 인도 사회에서는 기원전 6세기부터 카마수트라 가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성생활의 지침서로 등장했는데 천년 전 사람들, 찬드라 왕국 사람들의 섹스(sex) 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이해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사원을 나서자 관광객들을 상대로 카주라호(Khajuraho) 의 아름다운 모습과 성애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를 파는 사내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에로틱(Erotic) 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 같은 나이의 아이들의 눈빛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그림엽서 한권을 샀다. (아직 누구 에게도 보내지 못한 엽서 한 권이 그대로 남아있다.)

 

 

 

 

 

 

 

 

일정 마지막 날, 손등에 헤나 문신을 했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인도에서의 8일, 마치 하룻밤 꿈을 꾸고 난 듯한 느낌,

일상을 떠나 단 몇일 지내고 와서 글을 쓴다는 것이 참 우습다.

하지만 낯선 환경, 그곳의 문화, 그 곳에서의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안간힘 때문에 여행기를 쓴다. 단순한 기분 전환식의 여행이 아닌 그런 시간들, 일주일, 아니 열흘쯤 지나 면 손등의 헤나 문신은 지워 지겠지만 내 맘 속에 새겨진 그 곳에서의 기억들로 오래 오래 행복하다. 또 몇 년 지나 난 또 다시 ‘바라나시’를 찾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