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생각
손순자
아들 결혼식을 치르고 닷새 만이었다.
그 날은 결혼한 아들의 방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는 날이었다.
넷째 시동생의 다급한 전화가 오고 남편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자식들 중 누구의 말 도 듣지 않아 결국 큰 아들이 가서야 병원에 가자고 달래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입원시켰다.
며칠 사이 갑작스레 심해지신 치매 어머니를 요양원에 맞기고 돌아온 남편의 바지 주머니에서
비취색 목걸이와 반지가 나왔다.
그때까지도 어머님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 한 목걸이와 반지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아직까지 이쁜 손주며느리가 해 드린 이불을 한 번 덮어보시지도 못 했는데....
그 동안 장남의 손주가 결혼식을 하기 까지, 며느리가 해 드린 고운 한복 입으시고 예식장에 오실 때
까지 잘 버티어 주신 것이 새삼 고맙기만 하다.
“한데로 나갈까? 어제두 막내가 와서 나가서 귀(보청기)사서 옇구 소고기국밥 먹구
빠마하고 그랬어” “시방은 아픈지 어쩐지 몰라 잘 때도 이런데 쑤시고 그런 거 몰라
아무 감각을 모르겠어, 언제까지 이렇게 한도 없이 있어야 되는 건지?”
“얼른 다 낳아야지 나가지”
“그 사람들이 뭐 가라 소리 하겠어? 있는 사람은 1년도 있구 2년두 있어”
“아냐 다 낳으면 나가라고 하지, 엄마가 나이가 많으니까 낳는게 늦단말야 젊은 사람들
하고 틀려서”
가끔씩 언덕배기 요양원으로 찾아가면 어머님은 늘 한데로 나가자고 어린아이처럼
졸랐었다.
그 날 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건너편 소파에 앉아계신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너 처음으로 여기 왔제? 잔치 때 보구 처음이지?
그래두 너 처음 시집와서 나 잔치집 갈라고 한복입고 나서면 고무신 닦아놓고 신으라고 하면서
어머님 너무 고와요 꼭 새댁 같으세요. 라고 말했었지.”
그 때를 기억하고 계시는 구나.
어머니는 그렇게 나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오래전의 일들을 기억 속 에서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 내어 이야기 하셨다.
다행히도 맏며느리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요양원에서 생활 한지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구급차로 큰병원으로 향한다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응급실에서, 집중 치료실에서, 그리고 다시 병실로 ....
겨우 죽음의 고비를 넘긴 어머니는 이제 다시 세살바기 아기로 사신다.
기저귀와 소변줄을 차고 콧줄로 음식물을 드시고, 자꾸만 콧줄을 빼는 양쪽 손목을 침대에 묶어 놓았다.
정신이 말짱 하실 땐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 “어머님 사랑해요”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 한다 해도 병원에 갈 때마다 귀에 대고 속삭인다.
두 손 꼭 잡고 손 에 힘 줘 보시라고 말 하면 어느 날은 정말로 알아들으시는 걸까?
손에 불끈 힘을 주는 어머니.
“어머니 얼른 기운 내서 일어 나셔야해요. 내년 봄에 꽃구경 드라이브 해야지요
어머니 좋아하시는 왕갈비도 사드리고 오리고기도 먹으러 가야지요.”
오늘도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혼자 이야기 하며 눈 을 맞추면 천진한 아기처럼
오래 오래 두 눈 마주치시는 어머니는 지금쯤 어느 시간대를 사는 걸까?
돌아서는 발걸음은 늘 돌덩이라도 매단 듯 하지만....
그렇게라도 오래 오래 우리 곁에 살아 계실 수만 있다면
그 것 만으로도 나에게 큰 힘이 되리라.
***계간 [시와 산문] 2013년 겨울호 에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