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자시인의 수필

함 사세요

白松/손순자 시인 2013. 11. 15. 22:59

 

함 사세요

 

 

  아들의 결혼식 날이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작년 4월에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 날짜를 잡은 것이 어제일 같은데

어느새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창 예민하던 중학교2학년 아들은 집을 떠나 학교

배구부 숙소에서 생활을 했었다. 그때 전학 온 예쁜 여학생, 그리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학창시절. 그 후 태권도 사범으로 일할 때, 해병대 군 생활을 하며 휴가 나왔을 때, 전역 후 보안업체 에 근무 할 때 도 가끔씩 만나곤 하던 그 무렵. “우리 사귀는 거니?” 라고 물어 본 주말에 꽃다발과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 들고 와서 진지하게 만나게 되었다는 두 사람의 오랜 러브 스토리. 세월이 지나 서로가 꿈꾸던 사랑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지 어느 새 4년째다.

 

  우수, 경칩이 지났어도 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은 따스한 햇살이 살갗을 간질이고 바람결에 풍겨 오는 솔향기마저 유난히 싱그럽다.

“요즘엔 함도 거의 신랑 혼자 조용히 가지고 가요.”

지난번 한복 가봉을 하면서 가지고 간 여행용 가방(함가방) 을 챙겨 주시면서 하시던 말과 “나영아! 우린 남 하는 것 다 하자.” “ 네 어머님” 하던 말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행히 아들의 처가가 아파트가 아니고 한적한 단독주택이라 주위에서 시끄럽다고 항의 들을 일은 없을 것이라 우선 안심이다.

 

  아들의 예비 장모님과 며느리, 아들과 넷이서 함 싸는 과정을 신기한 듯 지켜봤다.

제일 먼저 함 바닥에 붉은 색 한지를 깔고 가운데에 노란색 오방주머니(콩, 팥, 찹쌀, 목화씨, 향나무를 주머니에 넣고 묶은 것)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고, 네 귀퉁이에 각 각 빨강, 파랑, 분홍, 초록의 오방 주머니를 고정시킨다. 그 위에 화장품을 넣은 상자와 한복 상자 그리고 소박한 패물, 그리고 목각 원앙 한 쌍과 예쁜 비단보에 싼 혼서지 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함보(붉은 보자기)로 여행용 가방을 곱게 싸고 무명을 손으로 꼬아 어깨끈을 만들어 멜 수 있도록 한다. 매듭이 없어 한 번에 풀린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이 무명을 잘 손질 해 두었다가 나중에 첫 아기를 낳았을 때 기저귀로 쓴다.

 

  드디어 함 가방이 완성 됐다.

이때, 함진 아비가 지켜야 할 행동 원칙을 설명 해 준다.

절대 뒷 걸음 치지 말아야 하며, 아무데서나 함을 내려놓아서도 안 되고, 잡담을 해서도

안된다 ... 등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매듭이 풀어지지 않게 정성스럽게 함 가방을 가지고 와 아들의 방에 넣어 둔지 8일 째,

예비신랑이 멋지게 한복을 입고, 방을 홀로 지키며 어여쁜 신부에게 팔려 가기만을

기다리던 가방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함진 아비는 ‘정현’ 이다.

함 가방과 함께 미리 준비해 둔 청사초롱 2 개와 오징어 가면을 들려 보내며 신신 당부를

한다.

 

  “아들!·· 함 잘 팔고와, 절대로 뒤 돌아 보아선 안 된다.”

“함 사세요, 함!

동네 처자들 아무리 탐이 나도 절대로 눈독 들이지 마세요.

이 함은 양주 골 강진사댁의 어여쁜 셋째 딸 에게만 판답니다.

쉿!~~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함을 사시면 덤으로 키 크고, 착하고 ,능력 있는 ...게다가

잘 생긴 총각을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어서 나와 함 을 사세요.”

 

함진 아비와 친구들은 집근처에서 처가 친척들과 흥겹게 흥을 돋운 후 에야

어여쁜 예비 처제와 친구들의 미인계로 무사히 신부 집으로 들어가 함진아비가 커다란

바가지를 한 번에 깼으며 가면으로 썼던 오징어 다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함 값도 두둑 히 받고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잔치국수 까지 먹었다며 아들은 밤늦게야 돌아왔다.

봄바람 에 때 맞추어 이제 두 가문이 새로이 한 가족이 되었다.

항상 아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꽃 보다 더 아름답고 착한 무공해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하련다.

 

 

2013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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