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자시인의 수필

첫사랑 이라 부르던 남자

白松/손순자 시인 2008. 11. 9. 08:13

첫사랑 이라 부르던 남자


가끔씩  (손순자 詩)


그대여

우리 가끔씩은 안부를 묻자

바람에 실어 보내거나

잔잔한 미소이거나

오랜 이별 뒤에 만나도

낯설지 않게


그대여

우리 가끔씩은 안부를 묻자

이 세상 의미를 두는 한 사람

손길 닿지 않는 곳에 있어

그 절망감으로 무관해져서

다시 모르는 사이가 되지 않게


손순자 시집 <소요산 연가> 중에서


“잘 다녀올게 15년을 기다렸는데 5년을 못 기다릴까?...”

잘 있다 전화 한 통 없더니...

5년이 지난 몇 달 후 그 의 訃音을 들었다.

참 따스한 인연이라 생각했던 그 가 죽었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어딘지도 모를 먼 길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다면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 존재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아 갈 힘이 된다던,

그대는 그저, 좁다란 골목에 눈 쌓이는 밤이면

생각나는 사람으로 내 가슴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비껴 가버린 인연을 그대는 ‘첫 사랑’ 이라며

기억 속에 남겨두고 바람결에 한 번씩 들추어 보았나요?

낡은 책갈피 안에 말려둔 꽃잎처럼 간직하고픈 사람이었나요?

그대 짧은 삶의 여정에서 ‘첫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남겨 놓고 이제는 정지된 시간 속으로 초대합니다.  

그대는...

 

 

손순자 수필집 <행복한 여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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