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의 인연 (황 여사님을 추억하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혼 시절 처음 살림을 차렸던 광명6동 에서의 승현 엄마, 미현 엄마, 영미이모,
가장 굴곡이 심했던 전곡에서 인연을 맺은 집 주인 김금순 여사, 아진엄마, 효정엄마,
등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호의를 베풀어 주셨던 분 들은 수 도 없이 많다.
지금도 가끔씩 전화 통화를 하거나 몇 년 만에 한 번씩 만나 얼굴을 보며 지난 시절을
떠 올리며 울고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은 인연처럼 아름다운 것 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래전 삼각지 로터리 아래 범흥공사 서울지사 에서 근무 할 때였다.
그 곳에서 주로 'checker' 일을 하던 내가 가끔씩 외근을 나가는 일은 ‘미국대사관’ 이나
내무부 치안본부, 외무부 여권과, 보건사회부, 미 8군 법무 장교실의 일을 보는 것이었다.
그 때 시청 앞, 태평로 본사의 일을 보던 미스 리 는 경리부 미스 윤 에게 버스 토큰 2개씩을 받아가지고 다닐 때였다.
주로 택시를 이용하여 다녀오던 어느 날 아침 이었다.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 나를 사장님 방으로 부르셨다.
그 곳에는 짧은 머리의 중년 여인이 함께 있었는데 신문 광고를 내서 뽑은 여자 기사였다.
그 녀는 오늘부터 내가 밖에 일을 보러갈 때 나를 태워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일을 다 보고나면 사무실까지 데려다 줄 나만의 전용 기사인 셈이었다.
여자 운전기사가 흔치 않았던 그 시절 신문에 광고까지 내어 채용해 주신 사장님의 배려가 너무나 고마웠다.
다음 날부터 사장님의 주황색 포니 는 낮 시간에는 나의 전용차가 되었다.
노란 색 선글라스에 흰색 면장갑을 끼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운전 하시는 황 여사님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바쁜 날은 하루에도 서너번씩 외근을 나갈 때도 있었지만 또 한가할 때는 하루에 한번도
나가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날에는 나는 2층에서 일을 하였지만 황 여사님은 아래층에서 우두커니 앉아 신문을 보거나 차를 손보는 일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우리가 차를 타고 오가며 나눈 이야기들이 지금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너무 편해서 월급 받기가 미안하다는 얘기를 몇 번인가 들은 기억
밖에는...
그러던 시간이 3 개월을 막 지날 때였다.
황 여사님이 일을 그만 두신다는 것이었다.
서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처럼 여자 운전자가 많은 시대에 살고 나도 운전을 하지만 30여 년 전 그 때
주황색 포니를 운전하던 황 여사님의 멋진 모습이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손순자 수필집 <행복한 여자> 중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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