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자시인의 수필

‘129 곱하기 2,700=348,300’ 의 기억

白松/손순자 시인 2007. 11. 9. 16:23

사랑하는 아들아 읽어 보렴.
엄마 편지 너무 오랜만이지? 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이틀이 멀다하게 엄마랑 교환일기도 많이 쓰고 그랬었는데....그 동안 너무 뜸했구나.

형이야!
엄마는 요즘 다시 찾아온 우리 가족의 평화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하는구나. 아침마다 너를 깨우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발바닥을 간질여서 안 일어나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기도하고, 그래도 안 일어나면 이불을 걷어내곤 너의 등짝을 때리는 아침은 즐거운 하루의 시작이야. 이런 엄마 마음 네가 조금이라도 이해 할 수 있을까?
지난번 넌 집을 나가며 이렇게 말했었지. “우리 집은 돈 밖에 몰라!” 네 말에 엄마도 화가 나서 “그래. 그 돈 없이 어디 살수 있나 봐” 라고 했었지. 그날 그 일이, 그 말이, 네가 집에 오지 않던 그 오랜 시간이 엄마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넌 아마 모를 거야.
그런데 넌 그런 엄마의 마음과 상관없이 승현이네 집에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게 지냈지. 하루는 엄마가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승현이도 학교에 가고 없는 방에서 너 혼자 쭈그리고 자고 있더구나. 그 때가 10시쯤이었는데, 학교에도 안가고 말이야. 그때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왜 넓은집, 편한 제방 놔두고, 사서 고생을 하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더구나. 그날 “엄마가 아무리 찾아 와도 다시는 집에 안가” 라는 네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너는 짐작도 못할거야. 그런 너의 태도에
난 독하게 마음을 먹었지. 네 휴대폰을 해지시키곤 해지가 되었는지 확인하느라 전화를 걸어보았어. 그때 들리던 메시지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 하신 후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처럼 너를 향한 엄마의 마음도 오늘로 끝이다. 라고 울음을 삼키며
마음속으로 수십 번 다짐을 했었단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을까?
네 누나가 작은 목소리로 “엄마! 내가 어제 ‘버디버디’ 에서 형 이를 만났거든....” 하는데, 네 이름만 들었건만 엄마 눈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여 왔어. 그 다음날 네가 일한다는 피자가게 건너편에서 널 몰래 지켜보고 있는데, 네가 차를 알아보곤 전화를 걸어와 잠깐 만났었지.
그날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무릎이 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너의 모습이 왜 그리 낯설게 느껴지던지....네 손을 잡고 엄마가 울면서 했던 말 생각나니? 그 날도 너는 네가 돈벌어서 학교에 다니겠다고 말했었지.
그날 흘리던 네 눈물 을보고 엄마는 이제 조금씩 너에게
다가가도 되겠다는 작은 희망을 가졌었단다. 키만 컸지 아직은 어린 네가
1시간에 2,700원 이라는 돈을 벌기위해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것을 생각하면 엄마는 지금도 온몸에 식은땀이 나는구나.
그때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피자가게 주인을 만나 미성년자에게 부모 허락도 없이 이런 일을 시켜도 되는 것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너에 대해 묻는 이들에게 ‘우리 아들은 가출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어른들의 사는 모습이 이해가 안 돼서 잠시 친구 집에 가 있는 것이다’ 고 했었는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넌 추석 때 엄마와 손가락 걸며 한 약속을 지켜 다시 집으로 돌아 왔어. 그날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들어온 넌 안방에 계신 아빠한테 “다녀왔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지. “이제 아주 온 거야?” “네.” “다시는 친구 집에 안 갈 거지 ?” “네.” 하는 아빠와 너의 대화를 보면서 남자들은 어쩌면 저리도 단순할까 싶어, 그 동안 엄마혼자 가슴앓이 한 게 아닌가 잠시 억울하기도 했었단다.
“엄마 이 돈으로 핸드폰 사면 안돼?” 하며 내민 하얀 봉투엔 ‘형이, 129 × 2,700=348,300. 가불 40,000. 합계 308,300’ 이라고 씌어 있었지. 네가 처음으로 돈 벌어온 봉투라고 두고두고 놀려먹을 거다 알았지?...

형이야! 이제 서야 고백하는데 하루만 자식이 안 보여도 부모 마음은 얼마나 걱정이 되고 애가 타는지 너는 몰랐을 거다. 너의 전화를 날마다 기다렸단다. 그리고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 격월간 ‘천원의 행복’ 8,9월 ‘사랑에게 길을 묻다’ 에 게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