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자시인의 수필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웠던 날

白松/손순자 시인 2008. 5. 6. 10:38
 

태안, 태배지역 자원봉사 하던 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요?

태안 기름 제거, 자원봉사, 어민들의 근심... 이러한 단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기 시작한지는 벌써 꽤 되었건만, 정작 실천에 옮기기에는 주저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겨레’에 실린 ‘서해안 살리기 캠페인 자원봉사’ 모집 공고가 제 눈에 띄었습니다. ‘이거다!’ 싶어 잽싸게 신청을 했지만, 막상 뽑히게 된다고 해도 걱정이었죠. 동네 전철역에서 첫차를 탄다고 해도 출발시간 전에 집합장소인 ‘합정역’에 도착할 수 없을 게 뻔한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던 봉사활동을 이번에도 미루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태안’에 발을 디딜 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전철보다도 더 이른 첫 버스를 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결심 덕인지 자원봉사자로 선발되었고, 출발장소에서 저와 같은 마음가짐의 다른 자원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혼자 온 이들도 있었고, 모자지간, 모녀지간, 그리고 친구나 연인과 동행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인원 점검이 끝나고 7시 15분경 목적지를 향해 버스가 출발하자 ‘오늘 한겨레 1호차에 탑승한 자원봉사자를 인솔할 사람은 한겨레신문, 마케팅팀의 서규석 이라는 소개와 함께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의 그날로부터 오늘이 127일째 되는 날, 이라는 설명을 듣고 ‘효과적인 기름제거 방법 제안’ 이라는 인쇄물을 읽으며, 약 6분가량, <환경운동연합>에서 제작한 [기적] 이라는 제목의 DVD 를 보고 나서는 더욱 더, 오늘 하루  내 힘이 다 하는 한 최선을 다해 봉사 하리라 굳게 다짐하게 되더군요.

버스가 서산 톨게이트를 벗어나 안면, 만리포, 태안 방향의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 하면서

곳곳에서 현수막이 눈 에 띄었습니다.


[자원 봉사자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 온 것이  미안 했습니다.

이제라도 온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인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2구, 태배지역은 오지중의 오지로 이번에 새로 길을 만들어 낭떠러지가 많아 조심운전 하지 않으면 너무나 위험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졸이며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한 점 바람도 없는데 비릿한 바다냄새 대신 기름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 했습니다.

부직포로 된 방제복과, 고무장갑, 마스크 와 장화를 신고 얼마 전에 새로 만들어 졌다는 가파른 철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이미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열심히 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포크레인  한 대가 큰 돌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었고, 또 한 쪽에서는 이미 땅 속 깊숙이 스며든 기름을 고압세척기를 사용하여 끓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전체 자원봉사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던 지난 2월 21일,  그 감격의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지난 겨우내 태안의 바다를 찾아 추위와 싸우며 기름을 닦아주신 그들의 애정 어린 손길 때문일까요?  겉으로 보기엔  그래도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두 세 개의 돌을 들춰내면 여전히 남아있는 기름기를 보니 과연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이, 그 한계가 어디쯤일까?

끝없는 의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기적은 있습니다.


채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은 작은 돌 틈 사이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소라게를

보았습니다.

이 검은 눈물바다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작은 생명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고무장갑을 벗고 소라게를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재빨리 그 작은 몸을 숨깁니다.

돌 틈에 묻은 기름을 닦는 내 손길이 더욱 바빠집니다.

자꾸만 푸른 희망이 생깁니다.

저 산의 진달래 보다, 개나리 보다 방제복 을 입은 사람 꽃 이 아름다운 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워’ 라는 어느 가수의 노래가 하루 종일 입안에서 뱅글뱅글 돕니다.

오후 4시경 작업을 마치고 주변을 정리 하고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오는 길에  태안군 환경연합 이평주 사무국장으로부터 천연기념물431호로 지정된  <신두사구 자연생태계> 에 관한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단 몇 시간의 봉사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 시간,

오늘을 계기로  좀 더 자주, 좀 더 많이 좋은 일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보람 있는 하루를 갖게 해 주신 한겨레신문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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