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료

어떤 바람의 술래 /손순자 신간시집

白松/손순자 시인 2016. 12. 31. 19:09



序文

제1부_ 엄마의 빨간불
사진/ 만나러 간다/ DMZ/ 빈집2/ 새해 첫 날/ 빈집/ 천은사/ 종합운동장에서/ 아들의 꿈
고마워요 요양병원/ 당신을 불러봅니다/ 동두천의 자랑, 의병장 김연성 열사!/ DMZ를 기억하다
이별 연습/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서/ 사랑의 힘/ 2009, 성년의 날/ 사랑은 때로/ 엄마의 빨간불
M시인/ 어느 백양나무 곁가지 이야기/ 새해를 맞으며

제2부_ 가을에 물들다
가을 보문사/ 돈세탁/ 그 집 앞을 지나며/ 일상의 행복/ 어떤 생일/ 꽃 무릇 피던 날/ 갱년기에 길을 묻다
버스, 정류장/ 거미/ 소금 꽃/ 야미리/ 고양이2/ 청마의 해를 맞으며/ 불구하고의 사랑/ 어머니가 사는 법
어떤 바람의 술래/ 낙타/ 부추꽃/ 소요산 자재암/ 라일락/ 길상사/ 고구마 꽃이 피었습니다
가을에 물들다/ 커피를 마시며

제3부_ 바람의 언덕
약수터 가는 길/ 100원/ 동해에서/ 피피섬/ 갠지스강/ 트레비 분수/ 시테 솔레이 사람들/ 연안부두를 떠나며(2008)
대룡훼리 선상에서/ 씨엠립의 아이들/ 커얼친 초원에서/ 석탑에서/ 쿠무타크 사막/ 독도에서/ 미얀마에서
바람의 언덕/ 3월, 탑골공원에서/ 다시 포항에서/ 몸살/ 약속/ 소요산 연기/ A Soyo Mountasin's Sonnet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There's Time Tears Come To Our Eyes Blindly/ 가끔씩/ From Time To TIme  

| 拔文 |
시간의 굴레에서 길어 올린 심상心想의 이데아Idea


안 익 수 (시인,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그의 시상詩想의 근원은 삶의 울타리에서 발화한다.
시심은 시의 살결이 되어 인간의 거리에 바람으로 인다.
그는 시를 가지고 물들이거나 애매한 의미로 수식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둥지에서 시간의 알을 품는다. 그
러기에 그의 시적 용암은 가슴을 통하여 분출하는 통증
이다. 그것이 시의 화풀이이자 미학의 집적이 된다.
손순자 詩人, 그가 안고 가는 바람은 벌레 먹은 세상이
먹다버린 이기利器의 잔치를 설거지 하는 것일 게다.
먼저 다음의 시와 만나보자.


땅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파란 양철지붕이 흔들리고
흙벽에 기댄 채 간신히 버티던
슬레이트도 떨어져 나갔다
치매가 의심되기 전 만해도
동사무소 소식지며 재활용 봉투
나눠주시던 키 작은 반장님
어느 날부터 그 모습 보이지 않았다
온기 없는 집 어딘가에 둥지 틀었는지
제집처럼 드나드는 고양이들
집주인 없어도 홀로 꽃 피우고
밤송이 키워내던 나무 한 그루
찾아오던 발길 뜸해지자
윤기도, 향기도 없다
대문을 지키던 문패마저
집주인과 마지막 인사 나누지 못하고
빈집과도 작별하는 날
이름 하나 마음에 새겨놓고 서있다
<빈집 2> 전문


시의 한 올을 당기면 안다.
손순자 시인은 물(생명)의 발원지를 찾아 골목길 가로
등 아래 표지판을 세우고 문패를 단다. 또한 그는 일상의
삽을 들어 변명의 터를 열심히 다지고 있다.


노랑, 빨강, 분홍 채송화들
반짝이는 눈으로 기지개를 켜며
햇살아래 모여앉아 수다를 떱니다
세상사 일이 버거울 때마다
고샅길이 생각나
지난날의 길가에 오르면
유년의 꿈이 그 자리에서 웃고 있습니다
작은 마당에 채송화를 심으며
7남매의 가슴에 꽃씨를 받자던
오늘은 당신을 불러봅니다
<당신을 불러봅니다> 전문


이 시에서는 향수의 그릇으로 엎지른 아픔과 간구를 캐
물으며 모성의 샘물을 긷고 있다.
그래 마당가에 사과나무가 붉게 익어 가면 인간의 가슴
에 어머니의 꽃불을 지피고 싶은 거다.

그럼 시 <어느 백양나무 곁가지 이야기>를 탐미해 보자.


지난 금요일
‘지혜의 등대’에서 빌려온 두 권의 책이
우연히도‘똥친 막대기’와‘똥 꽃’이었다.
오늘‘똥친 막대기’를 다 읽고
다음 책을 집어 들고 서야
그 두 권의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 식탁에서 지난 며칠 동안
향기로운 똥냄새가 풍겼을 텐데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어느 백양나무 곁가지 이야기>전문


시인은 한 권의 경험을 통하여 심상의 씨앗을 근원적 뿌
리의 바람으로 키워 끝내‘시화詩花의 언어’로 피워 낸다.
이러한 꽃의 언어는 시인의 미학적 갈채이자 의미론적
시심의 갈등이기도 하다. 그것은 시인의 사상의 영토를
일구는 삶의 질문이자 화답이 아닌가.
사람의 허기진 밥상에 수저를 들게 하는 꽃의 그릇이
다. 엄연한 것은 뜨락에 떨어지는 아침이다. 꽃의 의미는
시간의 태양과 손을 잡고 살이 여문다.
그러기에 이슬에 젖은 그의‘시화의 언어’는 신화神
話의 아프로디테(aphrodite)적 화술과도 닮아 있다.
어쩌면 시인은 꽃의 산실에서 욕망의 풀무질을 꿈꾸는
대지의 봄이 된다.
이처럼 그의 시는 선험적先驗的 사랑의 아리아(aria)다.
그러면 그의 시적 세간을 한 번 들여다보자.


봄엔 잎이 가을엔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붉은 상사화
가슴엔 아직
깊이 뿌리 내리지 못했는데
“상사화 피었어?”
그만 기다림에 지쳐
그 음성 들려오는 아침
다정한 눈 길 한 번 주지 못하고
모른 척 지나쳐도
오늘 거기 붉게 핀다
<꽃 무릇 피던 날> 전문


그의 시적 바람개비는 작지만 아득한 길을 밟는다.
인간의 악성에 따뜻한 옥타브를 안긴다. 삶의 길거리에
표지판이 되고 사람의 쟁반에 화채가 된다.
언어의 가위질이 다감하여 매콤하고 그윽하다. 불로
달구어진 언어는 시간의 발걸음을 끌어안아 포옹한다.
그의 시적 살림살이는 모서리에 부딪지 않고 서로 꾸미
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형식적 모호함에 담그는 맛에서도
적당히 비껴나 있다. 다만 빈터의 햇살에 살을 누이는 달
콤한 체온을 지나치지 않는다. 끝내 심상心想의 휴식은 메
모리즈(memorize)의 풍경에서 숨결을 쏟아낸다.
그의 언어의 살결은 감성의 눈금이 짙다. 신작로와 오
솔길이 손을 잡고 바람을 지고 가는 심상의 백일홍이다.
인간의 산술을 방임하려는 사랑의 의지가 마치 화단에
쏟아지는 강열한 달빛과도 짝이 된다.
그 빛은 이성적 사고의 눌림을 지나 감흥의 조화로 물
감이 된다. 그 물감은 바람이 타작하는 미학의 자유다.
그의 시적 언어의 앙탈은 아주 달콤하고 뜨겁다. 그의
시적 사유의 언질은 사람의 침샘을 자극하는 상큼한 울
림에 있다.
마치 아프로디테의 마지막 진술에서의‘그래도 사랑은
자유다’라는 분홍 손수건의 다림질이 아닐까.
그래서 그의 시는 사람이 꺾고 싶은 꽃이다.
그러면 그의 시 한 편을 들고 자리를 옮겨 보자.


착각이기를 바랐던 사랑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쥐어짜는
어떤 사랑이다
눈감고 잊으려 하는데도 불구하고
더욱 또렷이 다가서는 사람
그리움이 시작되기 전엔
도무지 알 수 없는 인연이었다
굴레를 벗지 못해
죄가 되는 사랑이라 해도
되돌릴 수 없어
처음 낀 반지처럼 설레는 사랑이다
<불구하고의 사랑> 전문


보석이 깨질 때 빛을 토하는 현상처럼 여기서 시의 구
상도 매혹적으로 몸을 비튼다. 심상이 가슴에서 부대끼어
내리는 처방은 달이는 약탕기라기보다 사랑의 문신이다.
사랑의 의미와 까닭은 항시 한통속이다. 가끔 사랑의 궤
도는 해바라기의 울타리가 아니다. 수컷과 암컷이 간음하
는 향기를 살에 바르고 싶은 거다. 시인은 그 시적 언어의
품성을 꼬드기어 인간 본성의 성감대에 물을 끓이고 있
다. 결국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살을 굽는다.
언어가 타는 연기로 시간을 출근시킨다. 비로소 사람의
정류장에 달이 뜬다.
손순자 시인의 유니크(Unique)한 언어의 두레박은 사
람의 물을 길어 목마른 물병을 채운다. 사랑의 부뚜막도
장작을 지펴야 침실이 따뜻하고 숭늉이 구수한 법이다.
<불구하고의 사랑>의 살 냄새는 끊어질듯 이어지는 고
요와 바이오리듬(Biorhythm)이다. 언어의 디자인이 아
니라 느낌이다.
행간을 지나 외출하는 언어를 미행하면 힐링의 방에는
달빛이 뜨겁다.
이처럼 그의 시는 상징적 체질화의 완성을 잘 거두고
있다.
다음 시로 자리를 옮겨 보자.


먼 바다 저편에서
바람 한 줄기 불어오면
기다렸다는 듯
언덕 위 풍차가 돌아간다
어색했던 연인들도
바람을 핑계삼아
두 손을 꼭 잡고 다정하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외로운 사람들은
그리운 사람들은
가슴이 먹먹한 사람들은
끝없이 끝없이
푸른 바다만 바라보다
다시 길이 되어 발길을 돌린다
<바람의 언덕> 전문


그의 시안은 사유와 인식의 스펙트럼을 통한 형상화로
감성의 굴레 안에서 자아를 냉철히 통찰하고 있다. 아마
도 시의 분장은 삶에 대한 경건한 변명일 런지도 모른다.
한낮 이 땅에 심부름 와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시대
의 연출이 아니다. 세상의 엉킴과 풀어짐의 관계성을 시
간과 바람의 물레로 가늠하고 있다.
그의 시적 창문은 감상과 해석의 미묘한 경계에 있다.
다음의 시를 보면 그의 창밖이 환히 보인다.


샛골길에 세 들어 살고 싶다
채송화, 도라지, 더덕, 국화
피어나는 거기에
주목나무 한 그루 붙잡고
방 한 칸 만들고 싶다
소요산 물소리 따 담으며
크레용 낙서를 마당에 키워서
고추도 심고 오이도 가꾸어
맨손으로 잡초를 뽑다가
부추꽃, 호박꽃이 맛이 들어
노을이 주공아파트 뒤로 질 때까지
바람과 말을 걸며
샛골길에 살고 싶다
<거미> 전문


그의 시적 부화는 입덧이 상큼하다. 까치가 햇살을 물
고 오는 아침에 그의 시는 타오른다. 울안에 밥상의 괘종
시계가 경쾌한 수저를 들게 한다.
한 송이 활짝 핀 구름이 하늘에 매달린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시적 이데아가 아닐까.
바람을 찢어 연을 만드는 그의 시작詩作의 페이소스적
매체는 달과 박꽃의 율동이 아닌가.
바로 그 리듬은 일상을 설거지 하는 분주한 의미로 이
어진다. 그 시적 사유와 반주하여 피어오르는 향기의 경
쾌함은 고단한 삶의 빨래를 물씬하게 헹군다.
그러므로 시인의 미학적 사유와 삶의 찬가는 바람과 공
명이 되어 꽃의 물감으로 떨어진다.
손순자 시인은 시에서 삶의 종소리를 이렇게 타종하
고 있다.
그 소리의 울림은 다음의 시에서 마침내 일상의 파도
가 된다.


먼 바다를 부르다가
혼자되어
하얀 옷을 입었나
짠물이 수놓은
땡볕의 입술을 깨물어
아리다 너의 모습이
간이 밴 박꽃이여
목마른 여인이여
<소금 꽃> 전문


그는 시상을 날로 두지 않고 발효시킨다. 익은 언어의
향기가 멀리 가는 법이다. 언어로 시위하지 않고 침묵으
로 불을 지핀다. 시적 달굼과 상상력은 햇볕의 미감(sense
of beauty)으로 간을 들인다. 그의 심상은 강으로부터 바
다에 이르는 여정의 보따리다. 그 여정의 물결은 열정과
냉정으로 증발하여 삶의 아름다운 궁극窮極을 서원한다.
이처럼 손순자 시인은 시심의 절제된 미감으로 흐트러
진 시간의 옷감에 물을 들인다.
그의 시적 발현은 사람의 마음결에서 이는 삭막한 양심
의 갈증에 있을지도 모른다. 문명의 이기로 곪은 자리에
‘소금꽃’을 선사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시인은 하늘과 바람으로 삶의 페달을 밟으며 땅과 하늘
에 대하여 간구의 편지를 쓴다.
그럼 그의 시는 어디로 갈까. 한 번 물어 보자.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었던 시간을 꺼내어 들고
조금씩 생각하며 신을 신는다
이제 그만 지우려 해도
아무렇지 않게
숲속 산책길 셀카도 보내주고
소소한 문자로 새벽을 깨우던
아직 잊어버리기에는
오래된 습관이 되어
아마 바라보던 강물도
혼자 흐르고 있을까
먼 시간의 그리움을 들어주던
계단을 오르내리며
오늘도 만나러 간다
<만나러 간다> 전문


시인은 불온한 강물에 떨어진 아픈 구름을 들어내며 살
아가는 정류장의 계단을 오른다.
시인의 집은 바람의 둥지일 때나 술래의 목청이어도 결
코 문패를 내리는 법이 없다. 그것은 시적 미학의 씨앗이
며 시적 변이의 화장일 것이다.
손순자 시인은 만연한 물질의 우월심리와 간극間隙의
부작용으로 풍화된 인간의 상처를 꽃과 살의 언어로 치
유하려는 꽃결의 시인이다. 달빛으로 대지의 움을 틔우
며 구름의 시간으로 포용하여 가슴의 언어로 합장合掌을
한다.
그는 강물에 하얀 구름을 띄우며 강변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