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료

편지로 여는 세상 제14집

白松/손순자 시인 2012. 5. 13. 11:13

(사) 한국편지가족 작품집  편지로 여는 세상 (2012 제 14집) 에 손순자 시인의 편지글

'샹그릴라의 여자 우체부 라쯔이에게' 가 수록 되었습니다.^*~

 

 

 

           ‘샹그릴라의 여자 우체부 라쯔이’ 에게

 

  안녕 라쯔이!

 

봄이 어느새 계절의 문앞을 서성이고 있는 2월의 중순입니다.

이제 지난 겨울날의 추억들도 고이접어 두터운 겨울옷과 함께 넣어두어야 할 때입니다.

편지를 보내는 내가 누군지 궁금하시지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대한민국 경기도 동두천이며 남편과 모두 장성해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두 아이를 둔 54세의 주부이며 작가이기도 합니다.

과연 이 편지가 라쯔이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아니 전해지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도 무작정 편지를 쓰고 싶어지네요.

처음 라쯔이를 알게 된것은 얼마전 우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샹그릴라의 여자 우체부 라쯔이’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면서지요.

내가 편지 쓰는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회원의 한 사람이어서인지 유독 ‘여자 우체부’ 라는 단어에 더욱 호기심이 생겨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샹그릴라’ 하면 떠오르는 유토피아 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작은 여자의 몸으로 오지중의 오지, 첩첩 산중을 넘어 고된 우편배달부 생활을 하는 라쯔이의 모습을 보면서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라는구절 들이 새삼 떠오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지금도 한국의 깊은 산중에서는 오토바이로 우편물을 배달 할 수 없어 일일이 걸어서 배달을 하는 곳도 간혹 있지만 라쯔이 처럼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1박2일씩 걸리는 곳은 없답니다.

무거운 배달가방을 메고 하루 평균 100리 길을 걸으며 우편물을 배달한다는 것이 요즘 ‘손 안의 TV' 라 불리는 DMB(이동멀티 미디어방송)나 스마트폰 하나로 뉴스, 드라마 등을 시청하는 시대의 우리에겐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기에 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내 막내 여동생같은 라쯔이!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2살난 딸과 남편과도 떨어져 살며 첩첩산중을 홀로 걷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할까요

라쯔이도 ‘곡등각’ 사원을 지날 때 석회물을 뿌려 2살난 딸의 안녕을 기원했을까?

하루의 일을 마치고 해가지기 전에 높은 산 언덕길을 내려와 오랜 친구 집에서 묵으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이 힘들었던 하루의 보상이라 생각한다는 라쯔이, 아픈 다리를 주무르는 지친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볼때는 안타까움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답니다.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고...

남은 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며 버킷 리스트(Bucket List) 를

작성하고 [딸과 함께 떠나는 서유럽 여행] 의 목록을 지워 나가며 뿌듯해 하면서... 삶의 양과 질에 대해 고민하던 나, 앞만 보며 허둥대며 살아오느라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삶의 터전에서 라쯔이의 힘겨운 삶을 보고 있자니 내 자신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이제는 너무나 낯설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유년의 고향냄새가 가슴에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아 어찌나 따스했는지모릅니다. 힘들고 가난했던 어린시절 지치고 고단했던 생활에 달관된 내 아버지 어머니 모습을 보는것만 같았습니다.

설날을 맞아 떨어져 살던 남편과 만나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라쯔이를 보면서 어렵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것은 역시 가족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서로 격려해주고 이해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머지않은 훗날 라쯔이의 세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살면서 행복의 웃음소리가 담장밖까지 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를 쓰는 순간 나도 소망이 하나 생겼습니다.

언젠가 ‘샹그리라’ 에 가게 되기를...

그곳에서 ‘여자 우체부 라쯔이’ 를 만날 수 있었으면 ... 하고

오늘부터 버킷리스트 목록에 첨부합니다.

그 날이 오게 되기를 기다리며...

늘 건강 하기를... 안녕 라쯔이!

                                                                                                       2012년 2월 15일

                                                                                                       한국에서 손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