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한 포기도 소중한 아침
남편을 출근시키기 위해 동안 역 으로 갔다.
기차 출발 시간 까지는 아직 10분정도 남았다.
그런데 오늘 따라 남편은 차에서 내리더니 역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매점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담배라도 피우려는 것일까?
그런데 남편은 삐죽이 올라온 풀잎을 뽑아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왜 역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저리로 가는 걸까? 순간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 차에서 내려 남편이 간 곳으로 살그머니 따라가 보았다. 그 곳에는 자그마한 농장이 있었다.
‘동안농장’ 이라는 글씨까지 써서 붙여놓은 그곳에는 크고 작은 토끼가 10여 마리나 되었고, 닭도 몇 마리 있었다. 토끼들은 남편이 뜯어 넣어주는 풀을 오물오물 씹으며 맛있게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나는 자동차의 시동을 켜 놓은 것도 잊은채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내가 나서서 그 주변의 풀들을 뜯어다 토끼들에게 주었다. 그러자 저 뒤쪽에서 한가로이 졸고 있던 다른 토끼들도 한 마리 한 마리 가까이 와서
우리가 철망 사이로 넣어주는 풀들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몇 가닥 뜯어 넣어준 풀은 금방 없어져버렸다.
몇 번을 그러고 나니 농장 주변의 풀들은 모두 없어져 버려서 난 조금 더 먼 곳의 풀을 뜯어 와야만 했다. 아! 그랬었구나. 매일 남편이 서둘러 역으로 가려고 하는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자기 혼자서 이 행복을 맛보다니....
입을 오물오물 움직여 내 손에 들린 풀을 받아먹는 작은 토끼들아!
오늘 아침 난 또 한번 작은 행복을 맛보았단다.
사람들 발밑에 무심히 밟히는 보잘 것 없는 풀잎 하나에 너희들은 온통 신경을 곤두세워 먹으려 하는 것을 보니 길가의 작은 풀포기조차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오늘아침 또 다시 실감한단다.
기차 시간이 되어 남편은 역사로 향하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 오늘 아침은 참 행복하다.
2001년 9월 월간 ‘해피 데이스’ 에 게제됨.
손순자 수필집 <행복한 여자> 중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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