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영원히

[스크랩] 내가 백석이 되어

白松/손순자 시인 2015. 11. 17. 23:38

 한국문인협회 손순자 시인

 

 

 

 

 

 

내가 백석이 되어             /이생진  낭송/손순자

 

 

  나는 갔다

  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 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

  찾아갈 수 있다는 신비한 신발을 신고 갔다

 

  성북동 언덕길을 지나

  길상사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전 마당 모래를 밟으며 갔다

  눈 오는 날 재로 뿌려 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만의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죽어서 만나는 설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

  한참 울다 보니

  그것은 장발이 그려놓고 간 그녀의 스무 살 때 치마였다

  나는 찔레꽃을 그녀의 치마에 내려놓고 울었다

  죽어서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손수건으로 닦지 못하고

  울었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 들어갔다는 말을 못했다

  

   

 

 

출처 : 호반
글쓴이 : 김남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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