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온 마음
두고 온 마음
어느새 아들의 군 입대 3년이란 세월이 훌쩍 스쳐가 버렸다.
해병대 입소를 하루 앞두고 동대구역 앞 제이스 호텔에 머물며 한국 대 프랑스와의 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느긋이 입영 전야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큰 착각이었다.
역에서 가까운 미용실에 들러 아들의 짧게 자른 머리를 아예 면도기로 밀고 나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괴로워하며 아들은 저녁밥도 먹는 둥 마는 둥했다. 그러더니 밤새도록 토하고 설사했다. 결국엔 새벽이 되어서야 급히 파티마 병원의 응급실을 찾게 되었다.
이런저런 검사를 마쳤다. 링거 주사를 맞으며 잠이 든 아들을 보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해병입대 수송열차를 타기 위해 링거 주사는 반도 맞지 못한 채 출발해야만 했던 그 날의 일들…. 지금엔 눈물 한 방울 보태면서 웃어넘길 수 있는 소중한 추억거리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그때 나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처음 경험하는 아들의 군 입대와 한동안의 헤어짐에 대하여 일종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의식되었다. 그래서 쓴 시가 「아들의 입소」이다. 여기에 옮겨보기로 하자.
파티마 병원 응급실에서 나와
동대구 역 7번 출구, 해병대 수송 3호 차를 타고
안강, 오야 지나 포항 가는 길,
햇살은 눈부신데 나는 자꾸 눈물이 난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설렘의 이면에 두려움도 있음을 눈치 챈 걸까.
이틀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너에게
두려움의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는 것을
그리움이 된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구나.
2년이란 시간 동안 푸른 청춘을
아낌없이 해병대에 바칠 아들아!
"몸 아프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고…"라며
누군가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서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리고 엄마에게 건네주곤
미련 없이 달려나가던 너,
연병장에서 눈물의 축제를 마치고선 기도했다.
반듯하게 홀로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게 해 달라고
돌아오는 길 내내 화살기도를 했단다,
이 엄마는….
2006년 6월 19일
―「아들의 입소」, 손순자 시집 『소요산 연가』 수록
추적추적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조물락거리던 동그란 토큰을 다시
반납하고 나서 서문시장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대구의 명물거리 양말 골목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느 골목과는 달랐다. 작은 상점들이 한데 모여 양편으로 촘촘하게 잇대어진 골목, 그런 길. 나는 낯선 그 골목을 처음 들어선 터라 그 때 받은 깊은
인상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남긴 시가 「양말 골목」이다. 이 시 역시 대구라고 하는 도시가 나에게
안겨준 영매(靈媒)와 같은 선물이었다.
일요일 아침,
양말 골목엔
비만 내리고
태화 상회도 천일 상회도
굳게 문이 닫혀 있다.
빠르게 내달리는 세상 한쪽에서
과거의 영광은 빛을 잃어가도
서로 도와 가는 보통사람들의 따뜻한 가슴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야기도
오늘 하루쯤 쉬었다 가고 싶으리라
형록 분식집 꾼만두를 찾는 이도 없고
문희 음악학원도 덩달아 조용한
비 오는 일요일 아침,
대신4길 양말 골목엔
주차 금지 표지판도 휴식을 취한다.
―「양말 골목」 전문
안개비를 맞으며 만국기가 펄럭이는 시장 골목, 입구와 출구의 문도 없는 시장의 정겨움, 이러한 전근대적인 문화가 나에게 준 인상은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소문난 이모네 수제비> <추억의 찹쌀 국화> 상점도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본격적으로 시장 속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시장의 안길이란 언제나 복잡하고 떠들썩한 것이 우리네 전통시장의 풍경인 것처럼 대구의 서문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번 지나갔던 길을 또 다시 지나가게 되어 방향 감각을 잃을 때도 없지 않았지만, 나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이 시장 길을 걸으며 구경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몹시 빠르게 내달리는 속도 위반 시대의 피로감은 현대인이 겪어야 할 필연적인 운명이라 하지만, 그러나 서서히 피로를 덜어갈 때 잠시나마 나에게 도피처가 되어주는 곳이 시장길이다. 비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걷다보면 서로 옷깃을 스치고 어깨를 부딪기 마련이며, 인간적인 유대감을 맛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시장 속이 아니겠는가. 어머니의 손맛이 물씬거리는 값싸고 푸짐한 음식과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곳이 재래시장이고 보면 시장 상인들의 다정 다감한 친절도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점빵이라 쥐껴 싸야 손님이 오지요."
이처럼 아내가 자리를 잠시 비우면서 남편을 채근해도 빙그레 웃으면 그만인 시장 사람들……
"맏동서가 동서 시켜 먹다가 며느리 보면 편할 것 같았는데, 동서보다 며느리가 어렵다 카더라. 며느리 보이 파이더라. 서로가 파이더라."
"조금만 구경하고 계시이소."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사투리를 들으니 그 날 나는 잊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 각박하고 건조하며 지루한 도시의 습관적 반복성을 잠시 피할 수 있는 정서 가득한 피난처, 대구 서문시장에서 나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2009년 12월 (사)대구경북발전포럼 NEWS 56호 에 게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