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재]시의향기(90)-오장환`성씨보(姓氏譜)`
내 성은 오씨(吳氏).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워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일청인(一淸人)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 숭배(大國崇拜)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 이가 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룰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어도 좋다. 해변 가으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구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랴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오장환(1918~?)'성씨보(姓氏譜)' (<조선일보>, 193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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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은 1918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1946년 월북한 작가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오학근의 첩으로 호적에 등재되어 있다. 이 출생이 시인의 일생을 지배한 콤플렉스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는 비애와 퇴폐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거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세계로 과거의 관습과 전통의 계승을 부정하고 서구적 취향에 몰두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성씨보'란 한갓 '오래인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왜 '오가(吳哥)'인지 모른다. 단지 조상 때부터 그렇게 불려 왔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를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족보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역사 전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의 시에는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거나 냉소하는 표현이 적지 않다. 이러한 극단적인 부정의 내부에는 강한 혁명의 에너지가 살아 숨쉬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는 완전한 계급혁명을 꿈꾸다 월북하였는지도 모른다. 원래 고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성(姓)은 어머니 쪽 혈통을 표시하는 것이었고, 씨(氏)는 아버지 쪽 혈통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우리 나라는 부계혈통만을 인정하고 있다. 21세기는 가족원 모두가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서 존중되는 민주적이고 열린 가족편제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신배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