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편지가족

미국 덴버 중앙일보에 보낸편지

白松/손순자 시인 2008. 7. 20. 13:58

고국에서 보낸편지 (16)

 

고향을 떠난 동생



아파트를 조금 벗어난 공터에 피어난 해바라기 꽃을 바라봅니다.

어느새 풀 같던 연약함의 과정을 지나 나무처럼 우뚝 솟아오른, 그 높이의 맨 꼭대기에 매달린 노란색 꽃이 오늘따라 어지럼증을 동반합니다.

며칠 전 받은 동생의 편지에서 '비행기만 봐도 그리운 고향으로 마음은 달려가고, 해바라기 꽃처럼 한국 땅을 바라만 본다.
' 던 내용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2003년 8월에 남편과 딸 셋과 함께 호주로 떠난 여동생은 전화를 하면 ' 응 언니' 라는 말만 하곤 더 이상 뒷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나 혼자 친정엄마 소식이며, 형제들 사는 거며, 김서방은 잘 있는지?, 별님, 지윤, 채현이 안부를 물어보면 '응, 응' 하고 대답만 간신히 할뿐이었습니다.

그러기를 육 개월쯤 지났을까요.
'별님이는?' 하고 물으면 라이브러리 에서 아직 안 왔다며 동생의 입에서 영어 단어가 가끔씩 튀어나오는 것이 얼마나 우습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늘 인쇄물이 가득 담기던 편지함에 항공봉투에 담긴 동생의 깨알같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릿지를 배경으로 활짝 웃는 아이들 사진과 함께 보내온 동생의 편지는 나를 많이도 울렸습니다.

난 급한 마음에 수화기를 들었고 '편지랑 사진 오늘 잘 받았어' 라는 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렇게 그리울 줄, 보고 싶을 줄 알았다면 떠나기 전 공항에서 조금 더 오래 안아주는 건데.... 조금 더 다정한 말을 많이 해 주는 건데.... 후회 막심이었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오랜 시간 주고받는 대화는 늘 갈증만 더 했습니다.

동생에게도 편지 받는 기쁨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막상 편지지를 대하고 보니 할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한참 동안을 망설이던 나는 그날 (엄마, 언니네, 오빠네, 동생 네, 우리 집에서) 있었던 일상을 일기처럼 쓰기 시작했습니다.

호주에서 보낸 편지가 8일만에 우리 집에 도착한다는 것도, 호주로 보내는 일반 우편 요금이 600원 이라는 것까지도 새로이 알게 되었지요.
신문을 읽다가 조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기사가 있으면 오려서 편지에(무게를 초과하지 않을 정도까지만) 넣어 보내기도 한답니다.

오늘도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동생은 아직도 마음만은 꼭, 꼭 챙겨 가지 못했나 봅니다.

사진 속 환하게 웃는 모습이 노란 해바라기 꽃 속에서 자꾸만 빙글빙글 돕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두고 간 마음까지 챙겨 가지고 갈까요?....
언제부터인가 나도 해바라기 꽃을 보면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편지가족 서울, 경인지회 손 순 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