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자시인의 수필

사랑하는 아들아!

白松/손순자 시인 2008. 2. 13. 22:19
 

형이야!  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

이제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어제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 (立春) 이었단다.

추운 겨울을 오랫동안 견딘 뒤에 듣는 봄 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반갑기만 하구나.

우선은 추위가 여러모로 불편하고, 난방비도 많이 지출되고, 따스한 햇살이 너무 좋아서지.

어제 너의 전화를 받고 너의 안부에 “너도 별일 없지?” 하고 물었는데 “엄마 나는 별일

있어.” 라고 말해서 처음에는 조금 놀랐단다.

이제 전역을 약 4개월 앞두고 있는 터에 제주도로 파견근무를 나가게 되었다니...그 것도

3개월씩이나...

네 가 괜찮다고, 가겠다고 했다지?... 남은 군 생활동안 또 다른 체험을 하게 되어 은근히 기대가 된다는 너의 말이 그래도 엄마를 안심시키더구나.

어제저녁에 누나한테 네가 다음주 월요일에 제주도로 파견근무 나간다는  얘기를 했더니 누나는 어제 우체국에 가서 발렌타인데이(2월14일) 선물로 초콜릿 보낸 거 받지 못하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그 안에 동봉한 편지도 편지지만 3개월 후면 초콜릿도 다 녹아서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다행히 네가 떠나기 전까지 네 손에 닿으면 좋으련만...

요즘은 계절 탓도 있지만 아빠를 비롯해서 우리 세 식구 모두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아빠는 여전히 일주일에 세 번 출근 하시고, 아직은 집 밖의 농사일이 많지 않아서 한가

하시단다.

엄마도 요즘은 그 동안 바쁘게 지내느라 놓치고 보지 못한 영화들을 비디오를 빌려다 보면서 지내고 있단다. ‘화려한 휴가’, ‘마이 파더’, ‘행복’, ‘똥개’, ‘향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페인티드 베일’, ‘색,계’ . 등, 등...그러고 보니 엄마처럼 팔자 좋은(?)여자도 드문 것 같다는 생각이드네.

누나도 수, 금요일 에는 ‘뉴스 컬쳐’ 에 출근한단다.

그 날은 마치 직장 다니는 사람처럼 아침 8시에 집을 나서서는 이태원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저녁 8시에 공연(연극이나, 뮤지컬)을 주로 대학로에서 보고 오면 11시가 넘는단다.

몇 일전에는 그 유명한 ‘사랑은 비를 타고’ 의 남자 주인공을 인터뷰 하고 왔다며 어찌나 좋아하던지...마치 인턴 기자가 아닌 프로 기자가 다 된 것 같았다니까...

엄마도 누나 덕분에 ‘뉴스 컬쳐’를 알게 되어 ‘초대 이벤트’ 행사에 응모하여 두 번씩이나 당첨되는 행운을 얻었단다.

첫 번째는 유명한 가수 ‘왁스’ 가 나오는 ‘화장을 고치고’ 와 두 번째는 바로 지난 주였는데 ‘라스트 게임’ 이라는 연극이었단다.

덕분에 젊은이들의 거리인 대학로에 두 번씩이나 다녀오기도 했었지

소극장의 매력이  바로 앞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숨소리 까지 들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아들과도 함께 이런 공연들을 보러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아들아!

그리고 요즘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면서 군대를 안 가려고 생 근육을 �는다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면서, 한겨울 눈밭에서 웃통을 벗고 뒹구는 해병대 1 사단 해병이 들의 활짝 웃는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보였는지 모른단다.


아들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단다.

힘들고 긴 시간들이었지만 슬기롭게, 용감하게 참 잘 견디어주었구나.

이제 남은 4개월도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보내야겠지?...

벌써부터 전역후의 우리 아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구나.

몸도 마음도 훌쩍 커 버린 자신을 느끼고, 보다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고,

작은 두려움 이었던 일들이 큰 용기로 바뀌는...

2년 전의 자신이 아닌, 진짜 변화된 모습의 ‘나’ 를 만 날수 있게 해 주는

아주 근사한 모습 일게다.

아주 값진 선물 일 테지?


아들아!

처음 너를 입소시키고 왔을 때만 해도 이틀이 멀다하게 너에게 편지를 보낼 것만 같았는데... 핑계 같지만 이렇게 게으른 모습에 엄마도 깜짝 놀란단다.

미안해 자주 편지 쓰지 못해서...

그리고 사랑 한다 아들아!

늘 너를 생각하면서도 행동이 따르질 못하는 구나.

우리 만날 때 까지 몸 건강히 열심히 살자.

사랑해  우리아들! 오늘 밤도 잘 자고 좋은 꿈꾸렴


2008년 2월 5일 밤에  엄마가...